금융위원회는 지난해 7월 국내 보험사들도 '단종(單種) 보험'이라는 새 보험을 만들어 팔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종보험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주택 화재 보험을 파는 식으로 특정 업종 종사자들이 물품을 팔 때 함께 파는 보험 상품을 말한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 혁신 및 건전화 방안'의 하나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보험사들이 출시한 단종보험 상품은 6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단종보험 상품 대부분이 현재까지 '가입자 0명' 상태다. 새로 선보인 단종보험 상품들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까닭은 뭘까.

◇'신상품' 단종보험… 가입은 '0건'

금융위 발표 이후 몇몇 보험사들이 단종보험을 내놨다. 삼성화재·KB손해보험이 부동산 계약 때 공인중개사가 파는 '주택화재 단종보험'을 출시했고, KB손보는 여행사가 여행 상품 계약과 연계해 팔 수 있도록 '해외여행 단종보험'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들 보험은 지난 1년 동안 가입자가 '0명'인 상태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A보험사 대리점 직원은 "본사에서 주택화재 단종보험을 출시했다는 공문을 읽어보고 그 보험이 판매 가능하다고 여긴 직원은 없었다. 1년에 많아야 1만원 정도 수수료를 받는 화재보험을 공인중개사가 굳이 팔 리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B손보가 출시했다가 얼마 전 판매를 중지한 해외여행 단종보험도 사정이 비슷하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여행사 직원이 이 보험을 팔려면 10시간 정도의 사이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보험은 나중에 민원도 만만치 않게 많다던데, 한 건당 수수료 2000~3000원 벌려고 교육까지 받고 보험을 팔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보증보험이 부동산과 연계해 지난 5월 판매를 시작한 전세금 반환 보증 단종보험은 보험료가 100만원 정도(전세 보증금 2억5000만원 기준)로 비싼 편이다. 공인중개사가 12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어느 정도 팔릴 것이라고 서울보증 측이 예상했는데 판매 실적은 현재 25개에 불과하다. 서울보증 관계자는 "가입자가 많지 않아 현장을 점검해 봤더니 공인중개사가 중개수수료를 받으면서 세입자에게 보험까지 들라고 권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더라"고 말했다. 그나마 판매 실적이 2300건 정도로 꽤 되는 단종보험은 계열사인 롯데손보·하이마트가 파는 전자 제품 애프터서비스(AS) 기간 연장 보험 정도다.

◇'난임보험', 소리 없이 사라져

정부 정책에 맞춰 보험사가 상품을 개발했지만 별 반응이 없어 흐지부지된 경우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저출산 극복을 돕는다며 2014년 말 출시를 예고했던 난임보험이 대표적이다. '난임부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민영 보험상품의 도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난임보험을 내놓거나 내놓을 계획이 있는 보험사는 전무하다. 몇몇 보험사가 정부 시책에 맞춰 난임보험을 검토하다가 접어버렸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당시 감독원은 난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만 난임보험에 가입하려고 하면 보험상품을 구성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단체보험(기업이 직원을 위해 가입해주는 보험)으로 개발해 보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대상이 되는 사람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사안이라 단체보험이 부담된다는 의견이 많았고, 기업은 기업대로 비싼 보험료를 부담하길 꺼려 출시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4대악(惡)'의 하나로 꼽는 학교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해상이 '행복지킴이 상해보험'을 내놨지만, 어린이보험 등 기존의 유사한 보험과 차별성이 없어 가입자 없이 자취를 감췄다. 45세부터 연금(보통은 55세)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도 싼 장애인 연금보험은 보험사들이 출시를 꺼리는 바람에 국책은행(산업은행) 계열사인 KDB생명과 농협생명이 2014년 내놓았다. 지난 2년 동안 가입자는 1000명 정도 된다. 보험료를 부담스러워하는 장애인이 많은 데다 설계사들도 수수료가 적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아 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들 편익을 높여주겠다고 보험 개혁안을 쏟아내지만, 막상 보험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정책 목표만으로는 현실화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단종보험(單種保險)여행사가 여행자 보험을 파는 식으로 특정 업종 종사자가 주력으로 하는 상품·서비스와 함께 판매하는 보험. 소비자는 편하게 보험에 가입하고 판매자는 보험 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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