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인생 길게 보려면 “재테크 보다 재무설계”
[동아일보]
자동차 제조업체에 다니며 월 200만 원을 받는 유모(27) 씨는 최근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한 증권사 지점을 찾았다.
유 씨는 매달 용돈과 신용카드 대금으로 쓰고 남는 돈 120만 원을 적립식으로 투자할 만한 수익률 높은 펀드를 추천해 달라고 증권사 직원에게 부탁했다. 3년 후 결혼할 계획이지만 결혼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한 구체적 고민은 없었다.
그러나 유 씨는 이 직원과 상담한 후 투자전략을 바꿨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결혼자금 계획을 세웠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결혼 후 전세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3년 만기 국내 주식형펀드에 매달 80만 원을, 또 장기적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해 장기주택마련펀드에 20만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씀씀이를 줄여 15만 원은 종신보험에, 25만 원은 변액연금보험에 붓기로 했다.
유 씨의 첫 번째 계획이 ‘재테크’라면 상담 후 세운 계획은 ‘재무설계’다. 재테크와 재무설계는 돈을 불린다는 목적은 같지만 투자 방식에는 큰 차이가 난다.
○ 생애 전체 투자 밑그림 그려라
최근 펀드투자 열풍이 불면서 일반인이 펀드 등을 중심으로 재테크에만 치중하는 데 대해 금융 전문가들은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3개월, 1년 등 짧은 기간을 정해놓고 돈을 굴려 가능한 한 최고의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전략, 즉 돈(재·財)을 버는 기술(tech)이라고 재테크를 정의한다. 이에 비해 재무설계는 5년, 10년, 은퇴 후 등 장기적으로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획을 세워 적정 수익률을 기대하며 자금을 굴리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재테크가 지나치게 단기적인 투자전략이며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큰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인 재무설계를 통해 생애 전체에 걸친 투자계획의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최근 몇 년간 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재테크 열풍이 불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시장 변동 때문에 높은 기대수익을 올리지 못했다”면서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자산을 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석 우리투자증권 용산지점 차장은 “무조건 좋은 종목이나 펀드 하나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바로 환매하는 고객이 많다”며 “이런 투자자들은 자녀 학자금과 은퇴비용 등 장기적으로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 재무설계 상담 수수료도 받아
아직까지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중요성을 깨닫는 투자자가 늘면서 재무설계 시장의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560명으로 2002년(66명)에 비해 8.5배로 늘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재무설계업체는 파이낸피아, 한국재무설계 등.
이들 업체는 금융자산이 일정 금액 이상인 고객을 대상으로 자산관리와 재무설계를 해주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PB(프라이빗뱅킹) 센터에 비해 문턱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CFP 자격증을 갖춘 직원들이 다수 배치돼 있으며 재무설계 상담 수수료를 받는다.
재무설계사들은 수익률이 높은 펀드를 쫓아 투자와 환매를 반복하기보다 결혼자금, 은퇴비용 등 장기적으로 얼마를 모아야 할지 목표를 정한 뒤 현재 소득과 지출에 맞게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때 본인의 위험 선호도나 연령대에 따라 은행 예금상품과 주식형펀드, 채권형펀드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목표를 세운 후 지출을 관리하고 적정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투자전략을 점검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홍종록 파이낸피아 센터장은 “재무설계는 단기적인 재테크 전략을 세워주는 곳이 아닌 만큼 개인투자자들은 재무설계 업체에 의뢰할 때 투자 마인드를 장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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